Gani 2026년 10월 2일(금)

호치민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 수업을 마치고 베트남 친구들과 베트남 카페 체인 푹롱에 갔다. 메뉴판을 펼치자마자 나는 아메리카노부터 찾았고, 친구들은 복숭아차와 밀크티를 골랐다. 음료가 다 나오고 보니 테이블 위 커피는 내 앞의 한 잔뿐이었다.

베트남 카페 음료

베트남에 산 지 8년. 그런데도 카페에만 가면 손이 먼저 아메리카노로 간다. 한국에서 몸에 밴 습관은 생각보다 오래간다. 베트남은 커피를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생산하는 나라인데, 그날 그 테이블에서 커피를 시킨 사람은 한국인인 나 하나였다.

친구들 입맛이 유별난 걸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베트남 카페 트렌드가 달라진 걸까. 마침 올해 3월, 도시 사람들이 카페에서 실제로 무엇을 주문하는지 영수증으로 확인한 조사가 나왔다. 그 결과를 카페 메뉴판과 겹쳐 보니 답이 보였다. 

차가 더 잘 팔리는 커피의 나라, 베트남

베트남 시장조사기관 Q&Me는 하노이와 호치민의 대형 카페 프랜차이즈 다섯 곳에서 손님 200명의 영수증을 모아 분석했다. 차를 시킨 손님이 커피를 시킨 손님보다 조금 더 많았다. 차이는 2%p. 숫자만 보면 작지만, ‘커피의 나라’라는 말을 떠올리면 꽤 낯선 결과다. 

한국이었다면 결과는 뻔했을 거다. 유로모니터 집계로 한국인은 2024년 1인당 커피 416잔을 마셨고, 아시아태평양에서 가장 많았다. 컴포즈커피는 2023년 11월까지 판매된 음료의 절반 가까이가 아메리카노 단일메뉴였다고 밝혔다. 나 역시 한국에 있을 땐 그 절반에 꼬박꼬박 보태던 사람이었다.

Q&Me 영수증 조사(2026년 3월). 하노이와 호치민의 프랜차이즈 5곳에서 평일과 주말, 오전과 저녁을 반씩 나눠 손님 200명의 영수증을 모았다. 한 장에 음료가 여러 잔 담길 수 있어 합계는 100%를 넘는다.
Q&Me 영수증 조사(2026년 3월). 하노이와 호치민의 프랜차이즈 5곳에서 평일과 주말, 오전과 저녁을 반씩 나눠 손님 200명의 영수증을 모았다. 한 장에 음료가 여러 잔 담길 수 있어 합계는 100%를 넘는다.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자. 모든 커피 매장에서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다. 푹롱에서는 차가 커피보다 두 배 넘게 팔렸고, 카티낫도 차 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하지만 커피로 유명한 쭝 응우옌 레전드에서는 커피가 더 잘 팔렸고, 스타벅스도 거의 반반이였다. 같은 도시의 대형 프랜차이즈이라도 주력으로 판매 하는 메뉴가 뭐냐에 따라 주문이 갈렸다. 그 말은 곧 베트남에는 커피보다 차 종류 혹은 다른 음료가 메인 메뉴인 카페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베트남 카페 메뉴판 속 차 다섯 가지 중 두 개는 복숭아차

프랜차이즈별 커피와 차 비율(Q&Me, 2026년 3월, 프랜차이즈별 손님 40명). 커피와 차 외 음료는 표시하지 않았다.
프랜차이즈별 커피와 차 비율(Q&Me, 2026년 3월, 프랜차이즈별 손님 40명). 커피와 차 외 음료는 표시하지 않았다.


푹롱이 차 쪽으로 기운 데는 내력이 있다. 1968년 람동성 바오록의 차밭에서 차를 만들어 팔던 가족 회사로 출발했고, 카페를 처음 연 건 2012년이다. 지금은 대기업 마산 그룹 계열로 전국에 매장을 두고 있다. 반세기 가까이 차를 내리던 집에서 차린 카페라면, 메인 메뉴가 차인 게 오히려 자연스럽다.

커피 쪽 프랜차이즈인 하이랜드 커피도 차를 곁가지로 두지 않는다. 조사한 다섯 곳 가운데 평균 결제액이 가장 낮은, 가장 대중적인 프랜차이즈이다. 얼마 전에 호치민의 하이랜드 매장에 방문했는데, 빵, 차, 커피 순으로 메뉴가 걸려 있었고 차 다섯 가지 중 두 가지가 복숭아 아이스티였다. 연꽃차는 6만 동으로 연유 커피보다 1만 동 비쌌다. 손님 한 명이 쓴 평균 금액이 6만 3천 동이었으니 딱 연꽃차 한 잔 값이다.

베트남 카페 하이랜드 커피 메뉴판, 차 다섯 가지 중 두 가지가 복숭아차
하이랜드 커피 매장 메뉴판. 차 칸의 Trà Thạch Đào와 Trà Thanh Đào가 복숭아차다.
호치민 매장, 2025년 무렵 촬영.


베트남에서 복숭아차 (복숭아 아이스티), 짜 다오(trà đào)는 흔한 음료다. 프렌차이즈 카페 메뉴판은 물론이고, 길가 음료 노점도 거의 다 복숭아 아이스티를 판다. 8년을 살면서 복숭아 아이스티가 없는 음료 가게를 찾는 게 더 어려웠다. 오렌지와 레몬그라스를 함께 넣은 아이스티는 카페와 찻집에서 가장 많이 찾는 메뉴로 꼽히고, 푹롱의 대표 메뉴 목록에도 들어간다. 한국 사람이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고르듯, 베트남 친구들에게는 복숭아 아이스티가 그런 음료인 것 같다.

🍵 짜 다오(trà đào)

trà는 차, đào는 복숭아다. 복숭아 과육이나 시럽을 넣은 차로, 오렌지와 레몬그라스를 더하면 ‘trà đào cam sả’ (복숭아 오렌지 레몬그라스 차)가 된다. 하이랜드 커피 메뉴판의 ‘Trà Thạch Đào’ (복숭아 젤리 차) 처럼 메뉴 이름에 ‘đào’가 보이면 복숭아가 들어간 음료다.

하노이 골목의 짜다, 호치민의 연못 카페

하노이에 살던 시기에는 어느 식당에 가도 짜다(trà đá)가 공짜로 나왔다. 무더운 날 얼음 가득한 짜다를 들이켜던 그 시원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호치민으로 거처를 옮겨 사는 동안 카페는 분위기부터 달랐다. 앤티크하게 꾸민 곳, 콘셉트를 제대로 잡은 곳이 많았고, 카페 안이 온통 연못으로 된 곳도 있었다. 하노이는 오토바이가 지나다니는 길가에 의자를 두고 차를 마시는 도시였다면, 호치민은 공간을 즐기러 카페에 가는 도시였다.

하노이 카페 짜다 노점

하노이 길가의 짜다 노점은 낮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해바라기씨를 까며 오래 이야기하는 자리다. 베트남 길가에는 ‘무료 짜다’라고 적힌 물통이 놓여 있어 지나가다 언제든 목을 축일 수 있고, 길가 카페에서는 커피를 시키면 짜다가 먼저 따라 나오는 경우가 많다. 겨울이 쌀쌀한 하노이에서는 연유 커피도 아이스 대신 뜨겁게 마시는 사람이 많다.

하노이 짜다 한 잔 값은 오랫동안 3천 동에 머물다가 지난해 여름 무렵 4천~5천 동으로 올랐다. 그래도 여전히 수도에서 가장 싼 음료다. 한 손님은 베트남 매체 VietnamNet에 “여럿이 열 잔을 마셔도 5만 동 정도라 커피 한 잔보다 싸다”고 했다. 하이랜드 연꽃차 한 잔 값이면 짜다를 열 잔 넘게 마실 수 있다.

하노이 길가 짜다 노점

재료도 소박하다. 북부 차 산지 Thái Nguyên (타이응우옌)의 값싼 녹차를 보온병에 우려 얼음 컵에 부어 낸다. 이런 짜다 문화는 얼음이 흔해진 1960년대 무렵 생긴 풍경으로 알려져 있는데, 노동자와 학생, 공무원이 한 의자에 섞여 앉아 동네 소식을 주고받는다고 해서 ‘thông tấn xã vỉa hè’ (거리의 통신사) 라는 별명도 붙었다.

커피는 밖에 나가서 마시고, 차는 집에 머물며 마신다.

베트남 여행 매체 베트남 코라클은 이렇게 썼다. “커피는 밖에 나가서 마시고, 차는 집에 머물며 마신다. 손님에게 내는 것도 차다.” 내가 겪은 베트남도 딱 그랬다. 차는 따로 고르는 음료라기보다 늘 곁에 있는 물에 가깝다. 카페 메뉴판에서 차가 커피만큼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집에서 마시는 베트남 차 문화

그날 친구들에게 왜 차를 시켰냐고 물었더니 대답은 간단했다. “Mình thích đồ ngọt thôi, cà phê thì đắng lắm.” 그냥 단 게 좋고, 커피는 너무 쓰다는 거였다. 허무할 만큼 단순한 답이었지만, 곱씹을수록 맞는 말이었다. 

Q&Me 조사에 따르면 베트남 프랜차이즈 카페 손님의 62%는 혼자 온 사람이었다. 가게를 고른 이유로는 맛 다음으로 편한 자리를 많이 꼽았고, 혼자 온 손님은 공부하거나 일하기 좋은 자리를 특히 중요하게 봤다. 

베트남, 생각보다 젊은 ‘커피의 나라’

베트남 커피 콩

그렇다고 ‘커피의 나라’가 과장은 아니다. 미국 농무부는 베트남이 2025~26년에 커피 약 190만 톤을 생산할 것으로 봤다. 브라질 다음이고, 그 많은 양이 모두 로부스타다. 쓴맛이 강하고 묵직해서 우유와 설탕을 넣어도 맛이 살아 있는 품종이라 인스턴트커피에 많이 들어간다.

다만 베트남 커피 역사는 짧다. 커피나무가 처음 들어온 건 1857년, 프랑스 선교사들을 통해서였다. 생산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건 1986년 경제 개방(도이머이) 이후다. 1990년대 내내 생산량이 해마다 20~30%씩 불었고, 그 끝에 브라질 다음 자리에 올랐다.

USDA 해외농업청 2025/26년 추정치. 커피 콩 생산 3,170만 포대(1포대 60kg) 가운데 국내 소비는 약 490만 포대다.
USDA 해외농업청 2025/26년 추정치. 생산 3,170만 포대(1포대 60kg) 가운데 국내 소비는 약 490만 포대다.


정작 베트남 안에서 마시는 건 생산량의 15% 정도고, 나머지는 대부분 해외로 팔려 나간다. 한국도 그 종착지 중 하나다. 2025년 1~8월 한국에 수입된 커피 원두 중 베트남산은 브라질산 다음으로 많았다. 맥심 오리지날 포장에도 원두 원산지로 베트남산 55%가 적혀 있고, 같은 이름의 커피믹스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무심코 타 마시던 커피도 커피믹스도 절반 넘게 베트남 커피 원두였던 셈이다.

베트남 현지 소비는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베트남 경제가 8% 넘게 성장하고 1인당 GDP가 5천 달러를 넘어서면서 커피 소비도 함께 늘었다는 게 USDA의 분석이다. 즐겨 마시는 방식은 여전히 까페 쓰어 다(cà phê sữa đá). 진하게 내린 로부스타에 연유를 붓고 얼음을 채우면 쓴맛은 가라앉고 향은 그대로 남는다. USDA(미국 농무부)는 베트남 소비자의 취향이 조금씩 고급 원두와 스페셜티 추출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고도 짚었다.

베트남 연유 커피

그럼 베트남에서 진한 연유 커피는 누가 마시냐고 묻자, 친구는 다음에는 길거리 카페와 해먹 카페에 가 보자고 했다. 그 곳은 베트남 아저씨들의 모임 장소인데, 아저씨들은 커피를 마시는걸까? 다음은 베트남 아저씨들이 모이는 길거리 카페와 해먹 카페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이미지 출처
– Phan Minh Tuấn,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 Takeaway,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 Frank Fox,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베트남 차문화베트남문화베트남생활
키키야, 이것도 궁금해!
베트남 사람들은 카페에서 커피보다 차를 더 많이 마시나요?

대도시 대형 프랜차이즈에서는 비슷한 수준이다. Q&Me가 2026년 3월 하노이와 호치민의 프랜차이즈 5곳에서 영수증 200장을 모아 보니 차가 조금 더 많았다(차 44%, 커피 42%). 푹롱과 카티낫은 차가, 쭝응우옌 레전드와 하이랜드 커피는 커피가 강했다.

베트남은 커피를 얼마나 생산하고, 얼마나 마시나요?

미국 농무부는 2025/26년 생산량을 약 190만 톤(3,170만 포대)으로 추정했다. 브라질 다음으로 많고 대부분 로부스타다. 베트남 안에서 소비되는 양은 생산량의 15% 정도다.

하노이와 호치민에서 연유 커피 이름이 다른가요?

호치민(사이공)에서는’cà phê sữa đá’ (아이스 연유 커피) , 하노이에서는 까페 너우’cà phê nâu’ (갈색 커피)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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