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오랜만에 교수님을 뵈러 하노이 사범대에 갔다. 그 선선한 아침, 베트남 길거리 카페 하나가 8년 묵은 질문에 답을 줄 줄은 몰랐다. 약속은 오후 2시였다. 그런데 학교 앞 골목을 천천히 걷고 싶은 마음에 아침 9시도 안 돼서 집을 나섰다. 이곳 어학당을 다닌 지도 벌써 수년이 지났다. 하노이의 11월은 가을이 한창 깊어 가는 때라, 아침 공기가 제법 선선했다.
학교 정문 맞은편, 어학당 시절 수업 사이마다 앉아 있던 길가 카페는 그대로였다. 무릎 높이의 빨간 플라스틱 의자, 얼음이 가득 든 스티로폼 통, 녹이 슨 철제 진열대 위의 연유 캔. 바뀐 거라곤 벽에 붙은 가격표뿐이었다. 연유 아이스커피가 1만 5천 동에서 2만 5천 동이 되어 있었다.

평일 오전 10시. 한국이라면 다들 사무실에 앉아 있을 시간이다. 그런데 의자 여덟 개 가운데 일곱 개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일곱 명 모두 아저씨였다. 이 아저씨들은 다리를 꼬고 앉아 신문을 넘기거나, 휴대폰으로 축구 하이라이트를 보거나, 아무 말 없이 길을 내다보고 있었다.
어학당에 다닐 때도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 이상하다. 왜 베트남 길거리 카페에는 아저씨들밖에 없지? 아주머니들은 다 어디 갔지? 젊은 사람들은? 남들 다 일하는 시간에 이 사람들은 왜 여기 있을까.
솔직히 그때 내 결론은 단순했다. 베트남 아저씨들은 참 여유롭구나.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한가하구나. 외국인 유학생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리고 그 생각을 8년 동안 한 번도 고쳐 본 적이 없었다.
베트남 길거리 카페 아저씨, 노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중
빈 의자 하나에 앉아 “Cho em một cốc nâu đá(연유 아이스커피 한 잔 주세요)” 라고 말했다. 주문을 받은 건 노점 주인 아주머니였다.

쉰은 넘어 보였다. 새벽 5시에 문을 열어 점심이 지나면 접는다고 했다. 아주머니가 커피를 내리는 동안 노점을 둘러봤다. 아저씨들이 앉아 있는 동안 아주머니는 한 번도 앉지 않았다. 핀에 커피를 눌러 담고, 얼음을 깨고, 빈 컵을 헹구고, 잔돈을 세고, 다시 커피를 내렸다. 이 노점에서 일하는 사람은 아주머니 혼자였다.

옆자리 아저씨는 탁자 위에 헬멧을 올려 두고 있었다. 낡은 초록색 그랩 조끼를 입은 걸 보니 ‘xe ôm(쎄옴, 오토바이 택시)’ 기사였다. 휴대폰 화면에는 그랩 기사용 앱이 켜져 있었다. 아저씨는 커피를 마시면서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길 건너 은행 앞에서는 다른 아저씨 한 명이 목에 호루라기를 걸고 오토바이를 정리하고 있었다. 주차 관리인이었다. 오토바이가 한 대 들어오면 벌떡 일어나 번호판에 분필로 표시하고 주차표를 끊어 줬다. 그러고는 길을 건너와 노점 의자에 다시 앉았다. 앉아 있는 동안에도 시선은 은행 앞에 가 있었다.

그때 쎄옴 아저씨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저씨는 커피를 반쯤 남긴 채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20분쯤 지나 돌아와서는 같은 의자에 앉아, 녹아서 연해진 커피를 마저 마셨다.
이 사람들은 노는 게 아니었다. 기다리는 중이었다. 손님을 기다리는 쎄옴 기사, 오토바이를 기다리는 주차 관리인, 주문을 기다리는 배달 기사. 아저씨들의 일터는 사무실이 아니라 길 위에 있었다. 길 위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대기실이 길가 카페였다. 그들에게는 일이 오기를 앉아서 기다리는 시간까지가 일이었다.

나중에 통계를 찾아봤다. 베트남 통계청 자료로 2025년 베트남 노동자의 63.1%가 비공식 고용이었다. 근로계약서도, 정해진 출퇴근 시간도, 사회보험도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다. 남성만 보면 66.4%로 더 높았다. 베트님 길거 카페에 앉은 아저씨 열 명 중 일곱 명 가까이는 애초에 출근 시간이라는 게 없는 일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평일 오전 10시가 그들에게는 근무시간이었다.
담뱃대가 한 바퀴 도는 자리
“치익, 뽁.” 뒤쪽에서 대나무 통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니 옆 테이블 아저씨가 팔뚝만 한 ‘điếu cày(대나무 담뱃대)’에 ‘thuốc lào(베트남식 물담배)’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담고 있었다. 라이터를 대고 한 모금 길게 빨아들이자 대나무 통 안에서 물 끓는 소리가 났다. 아저씨는 잠시 숨을 참았다가 천천히 연기를 뱉었다. 흰 연기가 노점 천막 아래로 퍼졌다. 다른 아저씨들도 저마다 궐련에 불을 붙였다.

“Hút không?(한 대 할래?)” 아저씨가 담뱃대를 내 쪽으로 내밀었다. 웃으며 손을 젓자, 아저씨는 아무렇지 않게 옆 사람에게 담뱃대를 넘겼다. 처음 보는 사이처럼 보였는데, 담뱃대가 한 바퀴 돌고 나니 축구 이야기가 시작됐고, 기름값 이야기로 넘어갔다. 담배는 이들에게 피우는 것이라기보다 말을 거는 방법에 가까워 보였다.
주인 아주머니는 연기가 올 때마다 눈을 찡그리며 손부채질을 했다. 아주머니가 담배를 입에 대는 일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베트남에 사는 동안 담배 피우는 여성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숫자도 그랬다. 2024년 베트남 성인 남성 흡연율은 41.1%였다. 여성은 2015년 조사에서 1.1%였다. 남자는 열 명 중 네 명이 담배를 피우고, 여자는 백 명 중 한 명이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베트남 길거리 카페는 처음부터 남자들끼리 담배를 권하며 시간을 보내는 자리였다. 아주머니들이 거기 앉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너는 일 안 가?
커피를 반쯤 마셨을 때였다. 컵을 치우러 온 주인 아주머니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Em không đi làm hả(너는 일 안 가?)?” 라고 물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평일 오전 10시 반, 베트남 길거리 카페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는 외국인 남자. 아주머니 눈에는 나도 일곱 명의 아저씨와 다를 게 없었다.
“저는 여행객이라서요.” 얼떨결에 그렇게 둘러대자 아주머니는 “여행 왔다면서 베트남어를 그렇게 잘해?” 하고 웃더니, “그럼 재밌게 놀다 가.”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섰다. 그런데 그 질문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나는 아침부터 이 아저씨들을 일 안 하는 사람으로 보고 있었다. 정작 이 노점에서 일 안 하는 사람처럼 보인 건 나였다. 그 질문을 던진 사람은 새벽 5시에 노점을 열고, 내가 앉아 있는 내내 한 번도 의자에 앉지 않은 아주머니였다. 의자 여덟 개를 채운 손님들의 커피를 혼자 내리고, 컵을 치우고, 돈을 받았다. 이 길가 카페를 움직이는 사람은 의자에 앉은 일곱 명이 아니라 그 사이를 오가는 한 사람이었다.
건물 안의 일, 길 위의 일
오후 2시, 교수님 연구실에 들어섰다. 반가운 인사가 오가고 그동안 지낸 이야기가 한참 이어진 뒤, 아침에 있었던 일을 꺼냈다. 왜 베트남 길거리 카페 의자에는 아저씨들만 있는지, 아주머니들은 다 어디 있는지.
교수님은 잠시 웃으시더니 베트남 속담 하나를 꺼내셨다.
📍 Đàn ông xây nhà, đàn bà xây tổ ấm
남자는 집을 짓고, 여자는 가정을 짓는다.
“옛날 말이야. 남자는 밖에서, 여자는 안에서. 근데 요즘은 아니지. 여자들은 밖에서도 일하고, 집에 와서도 일해.” 교수님 말씀을 듣고 아침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아주머니들은 사무실 책상 앞에 있거나, 시장 가게를 지키거나, 노점에서 혼자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2025년 베트남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63.0%. 남성(74.3%)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내가 아는 베트남 여자들도 모두 일을 했다. 학교 교직원, 시장 상인, 카페 사장님, 은행원. 그리고 대부분 퇴근하면 저녁을 차렸다.

그제야 그림 하나가 맞춰졌다. 아주머니들의 일은 건물 안에 있었다. 사무실과 가게 안에서 일하는 사람은 길을 지나가는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아저씨들의 일은 길 위에 있었다. 쎄옴을 기다리는 시간도, 주차를 기다리는 시간도, 일이 없어 앉아 있는 시간도 모두 길에서 훤히 보였다.
“그럼 젊은 사람들은요?”
“에어컨 있는 카페 가지. 와이파이 되는 데서 노트북 켜고.”
교수님 말씀에 웃음이 났다. 지난 글에서 쓴 프랜차이즈 카페에는 노트북을 편 젊은 사람들이 빼곡했다. 같은 시간, 같은 도시에서 젊은 사람들은 에어컨 아래 프랜차이즈 카페에, 아저씨들은 길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다. 둘 다 카페에 앉아 있지만, 한쪽은 일하는 중으로 보이고 한쪽은 노는 중으로 보였다. 노트북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다.
마흔넷에 회사를 나온 쎄옴 기사
교수님과 헤어지고 나니 해가 기울어 있었다. 집에 가기 전에 다시 학교 앞 노점에 들렀다. 노점은 접혀 있었지만 바로 옆 담벼락에 아침의 쎄옴 아저씨가 오토바이에 걸터앉아 있었다. 가볍게 인사하자 아저씨가 반갑게 알은체를 했다. 아침에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한국 사람이라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 손님 많았어요?”
“여섯 번. 오전엔 두 번밖에 못 태웠는데, 점심때 좀 탔지.”
아저씨는 담배를 한 대 물더니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꺼냈다.
“원래는 회사 다녔어. 물류 회사 창고 관리. 15년. 올해 초에 잘렸지. 마흔넷에.”
구조조정을 하면서 월급 많이 받는 나이 든 사람부터 정리했다고 했다. 몇 달 동안 이력서를 냈지만 연락이 오는 곳은 없었다. 채용 공고마다 35세 이하가 적혀 있었다. 그래서 집에 있던 오토바이로 쎄옴을 시작했다.
“아내는 시장에서 옷 팔아. 애 둘은 학교 다니고. 아내가 버는 게 지금은 나보다 많아.”
아저씨는 웃었지만, 그 웃음은 조금 어색했다.

베트남 채용 플랫폼 TopCV가 2025년 3분기에 기업 채용 담당자와 노동자 3천여 명을 조사한 결과, 40대 이상의 해고율이 19%로 모든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았다. 다섯 명 중 한 명꼴이다. 그 아저씨는 그 19% 안에 있었다. 그리고 회사를 나온 뒤 66.4%의 비공식 노동자 안으로 들어갔다.
“집에 있으면 뭐 해. 여기 나와 있어야 손님도 오고, 사람들 얘기도 듣고. 일자리 소식도 여기서 들어.”
아저씨에게 길가 카페는 쉬는 곳이 아니었다. 다시 일을 찾는 곳이었고, 일이 들어올 때까지 버티는 곳이었다. 아저씨의 휴대폰이 울렸다. “또 보자” 하고 헬멧을 쓴 아저씨는 퇴근길 오토바이 물결 속으로 사라졌다.
8년 만에 알게 된 답
집으로 돌아오는 그랩 오토바이 뒷자리에서 하루를 되짚어 보는 동안, 길가마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 아저씨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침과 똑같은 풍경이었지만, 더는 같아 보이지 않았다.
8년 전 나는 물었다. 왜 베트남 길거리 카페에는 아저씨들밖에 없을까. 이제는 답할 수 있다. 아주머니들은 건물 안에서 일하고, 아저씨들은 길 위에서 일한다. 길 위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길가 카페가 사무실이고 대기실이다. 그래서 늘 아저씨들만 눈에 띄었다.
외국에 산다는 건 어쩌면,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던 습관을 조금씩 고쳐 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미지 출처
Wikipedia, Cà phê sữa đá, Wikipedia, Xe ôm, Wikimedia Commons, Hanoi, motorcycle parking, Wikimedia Commons, Bamboo pipe at Vân Anh Iced Tea, Wikipedia, Chợ Bến Thành
